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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정원
애인님으로부터 ”필사를 해보는건 어때요?“ 라는 권유를 받았다. 잉크와 만년필을 비롯한 문구를 좋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문장 필사에도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들의 아름다운 필사 작품들을 구경하는 걸 좋아했지만, 역시나 그동안은 직접 도전할 용기를 쉽사리 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편지에 문장을 쓸 때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사람이고, 그렇다면 책 속의 문장을 옮겨 쓸 때도 나의 마음을 담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이 붙었다.한강 작가님의 「작별하지 않는다」 는 책을 구매한 지는 어느 정도 되었지만, 바쁘고 힘든 일상에 지쳐 독서 의욕이 잘 나지 않아 읽는 진도가 느리게 나가고 있었다. 다행히 오늘은 비교적 좋은 집중력으로 읽어나갈 수 있었고, 완독은 미처 다 하지 못했지만 충분히 완독할..
읽는 내내 고요한 활자들 속에서도 위태롭고 긴장되는 분위기가 느껴졌는데, 작가가 의도적으로 치밀하게 문장을 벼리고 깎은 결과물이었다.안온한 삶을 위해 부당한 일로부터 눈돌리고 싶어하는 자세는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본성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다른 누군가를 돕겠다고 나서는 마음이 앞설 수 있는 것은, 그들 역시 누군가의 선의에 힘입어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서로 돕고 의지하는 행위가 사소할 만큼 개인적인 영역이더라도 그 행동을 이끌어 내는 마음은 세상의 불합리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열쇠일 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4~5년 전쯤에 한번 읽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내용이 기억에서 희미해져가 다시 한번 읽었다. 해로운 영령들을 장난감으로 퇴마하는 씩씩한 주인공과, 아무리 툴툴거려도 주인공을 곁에서 지켜주며 결국 몸과 마음까지 내어주는 조력자까지, 영락없이 흥미진진한 오락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증오와 악의가 넘치는 세상 속에서도 유쾌함과 사랑을 잃지않는 이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감동적이다.또 처음 읽을 때 크게 와닿지 않는 문장들이 다시 읽으면서 좀 더 마음속 깊이 맺히는 느낌이 좋았다. 과거에는 스스로의 불행에 너무 깊이 빠져있던 시기였기에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감각이 무뎌져 있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던 것 같지만 정말 마음 깊이 이해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자신이 없다. 여전히 부족한 점은 많지만 그럼에도 지..
소설에 등장하는 ‘이능범죄’와 ‘교란’이 없어도 ‘희망을 모르는 세대’ 가 되어버린 현시대 한국 독자인 나에게 큰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었다. 재난이 만든 비극으로부터 눈돌리지 않고, 슬픔을 기억하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기적이 있다. 그 기적은 분명 소중한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으로부터 시작해 모두를 향해 나아간다.
작가가 SF 도서관 수준으로 방대한 지식과 막대한 애정을 쏟아부은 굉장한 단편집. 기상천외한 전개에도 빠져들며 설득되는 이유는, 어중간한 망상이 아니라 확고한 지식과 열정이 이야기의 세계를 단단히 지탱해주고 있기 때문이겠지. 현실은 타자의 고통을 너무나 쉽게 대상화하고, 공상은 쉽게 아픔에서 눈돌리게 하는 연약함을 지닌다. 그렇기에 우리는 한계 너머의 세계를 꿈꾸는 동시에 한계가 있는 세상 속에 존재하는 가치를 지키려는 강인함이 필요하다. 그 강인함이 소설이라는 표현 양식에 내재한다는 확신을 주는 단편들이 빼곡히 담겨있다. SF를 좋아한다면 무조건 권해주고 싶고, 아니더라도 잘 쓰인 소설로서 훌륭하니 추천해주고 싶다. 특히 맨 마지막 단편 ‘빛보다 빠르게, 느리게’ 는 꼭 애니메이션화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