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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정원
이따금씩 주변 사람들을 따라 을지로를 구경하곤 했다. 세운상가, 동묘시장, 서울풍물시장 등 옛 자취들이 현재에 숨쉬는 그곳에 독특한 매력을 느끼던 와중 도서관 책장에서 이 책이 눈에 띄였다. 처음에는 서가에서 꺼내 훑어보는 정도에서 그쳤지만 자세히 읽어보고 싶어 이후 방문 때 대출하여 읽어보았다.을지로라는 지역에서 옛날과 지금의 문화가 어떻게 공존하며 변화해가고 있는지, 을지로의 가게들은 어떤 지향점을 갖고 운영하고 있으며 그곳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연이 있는지 등을 인터뷰를 통해 생생히 접할 수 있었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작가님이 펜화로 세밀하게 그려낸 을지로 거리를 눈으로 따라가고, 사진으로 담아낸 을지로 사람들의 생동감에 시선을 집중하기도 했다. 을지로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 책에서 가득 느껴졌..
예전에 애니메이션 「빙과」 를 재밌게 봤다. 애니를 인상깊게 봤으면 원작도 챙겨보곤 했기 때문에 「고전부 시리즈」 소설도 찾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로부터 시간이 몇년 흐른 뒤에 이 책을 빌려보게 되었는데, 처음 애니와 소설을 봤을 당시 잘 와닿지 않았던 등장인물의 감정과 생각에 어느정도 공감의 여지가 생겼음을 알게되어 신기했다. 각 에피소드에 담겨있는 여러 미스터리 장르의 오마쥬에 대해 원작 소설가가 자세히 풀어 설명해주는 것도 좋았고, 잡지에 실린 짧은 단편 소설이나 고전부 등장인물의 책장을 통해 취향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특집도 즐거웠다. 지금 소설을 다시 읽어보면 처음 접했을 때와 감상이 제법 달라져 있을 것 같아, 도서관에서 빌려서 처음부터 다시 읽어볼 생각이 있다.
읽는 내내 고요한 활자들 속에서도 위태롭고 긴장되는 분위기가 느껴졌는데, 작가가 의도적으로 치밀하게 문장을 벼리고 깎은 결과물이었다.안온한 삶을 위해 부당한 일로부터 눈돌리고 싶어하는 자세는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본성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다른 누군가를 돕겠다고 나서는 마음이 앞설 수 있는 것은, 그들 역시 누군가의 선의에 힘입어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서로 돕고 의지하는 행위가 사소할 만큼 개인적인 영역이더라도 그 행동을 이끌어 내는 마음은 세상의 불합리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열쇠일 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4~5년 전쯤에 한번 읽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내용이 기억에서 희미해져가 다시 한번 읽었다. 해로운 영령들을 장난감으로 퇴마하는 씩씩한 주인공과, 아무리 툴툴거려도 주인공을 곁에서 지켜주며 결국 몸과 마음까지 내어주는 조력자까지, 영락없이 흥미진진한 오락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증오와 악의가 넘치는 세상 속에서도 유쾌함과 사랑을 잃지않는 이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감동적이다.또 처음 읽을 때 크게 와닿지 않는 문장들이 다시 읽으면서 좀 더 마음속 깊이 맺히는 느낌이 좋았다. 과거에는 스스로의 불행에 너무 깊이 빠져있던 시기였기에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감각이 무뎌져 있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던 것 같지만 정말 마음 깊이 이해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자신이 없다. 여전히 부족한 점은 많지만 그럼에도 지..
책과 그림 둘다 무척 좋아해서 한때는 일러스트 작가를 꿈꾸었다. 그다지 적성이 없어서 포기했지만 그림에 관련된 이야기는 그럼에도 늘 좋아해 왔다. 그래서 반지수 작가님의 그림과 책에 관한 에피소드를 트위터에서 인상깊게 봤는데, 작가님 본인의 저서가 궁금해서 읽어보았다.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한 '스킬' 에 관한 책과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모티베이션' 이 되는 책, 이 두 가지에 대해 꽤 골고루 자세히 다뤄주는 점이 좋았다. 또, 이미 유명한 책도 주관이 뚜렷한 작가님의 시선을 거쳐 서술되니 신선하게 다가왔다. 책과 그림 사이의 관계를 살필수록 서로에게 어떤 작용을 해야 함께 잘 어우러질 수 있는지, 그러면서 동시에 어떻게 해야 고유의 영역을 지킬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되는 점이 인간관계처럼 복잡다단했다.책이..
콘솔게임 매니아인 애인이 게임 「데스 스트랜딩」을 짧게나마 내게 플레이 시켜준 것을 계기로 관심을 갖게된 게임 디자이너 코지마 히데오의 저서이다. 자신의 창작물에 있어 큰 영향을 주었던 책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의 작가주의적 창작론을 살펴볼 수 있다. 그가 말하듯 이야기의 본질은 유대이기 때문에 이야기는 고독한 사람들의 편이 되어준다. 그렇게 한때 고독했던 이들은 응원을 받아 또다른 이야기를 만들며 유대를 이어나간다. 이러한 흐름은 평소의 생각과 밀접했기 때문에 더욱 책의 내용에 몰입하게 했고, 항상 그렇듯이 나를 감동시켰다.또한 그의 방대한 감상 리스트에 무척 고무받았고, 아직 접하지 못한 수많은 작품을 더욱 열정적으로 씹어삼켜 내것으로 소화하고 싶다는 욕구도 더욱 강해졌다.그 속에서 전혀..
소설에 등장하는 ‘이능범죄’와 ‘교란’이 없어도 ‘희망을 모르는 세대’ 가 되어버린 현시대 한국 독자인 나에게 큰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었다. 재난이 만든 비극으로부터 눈돌리지 않고, 슬픔을 기억하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기적이 있다. 그 기적은 분명 소중한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으로부터 시작해 모두를 향해 나아간다.
작가가 SF 도서관 수준으로 방대한 지식과 막대한 애정을 쏟아부은 굉장한 단편집. 기상천외한 전개에도 빠져들며 설득되는 이유는, 어중간한 망상이 아니라 확고한 지식과 열정이 이야기의 세계를 단단히 지탱해주고 있기 때문이겠지. 현실은 타자의 고통을 너무나 쉽게 대상화하고, 공상은 쉽게 아픔에서 눈돌리게 하는 연약함을 지닌다. 그렇기에 우리는 한계 너머의 세계를 꿈꾸는 동시에 한계가 있는 세상 속에 존재하는 가치를 지키려는 강인함이 필요하다. 그 강인함이 소설이라는 표현 양식에 내재한다는 확신을 주는 단편들이 빼곡히 담겨있다. SF를 좋아한다면 무조건 권해주고 싶고, 아니더라도 잘 쓰인 소설로서 훌륭하니 추천해주고 싶다. 특히 맨 마지막 단편 ‘빛보다 빠르게, 느리게’ 는 꼭 애니메이션화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