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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정원
첫눈이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눈은 차갑지만 동시에 세상을 끌어안듯 덮어주는 것 같은 상반된 이미지가 늘 신기했다.아직은 조금 더 눈에 설렐 수 있는 마음을 간직하고 싶다.
이번 주중은 내내 어둡고 축축한 안개속을 헤메는 것처럼 고되고 지치는 일상을 보냈다. 그럼에도 기운을 다시 차릴수 있었던 것은 소중한 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했고, 음악을 듣고 게임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 이만큼이나 정성어린 물건을 많이 받았다. 서로를 떠올리며 마음을 담은 선물을 건넬 수 있는 한, 우리는 매서운 추위에 얼어붙을 지언정 다시금 모닥불을 피워 따뜻하게 녹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프라우 파우스트」의 요한나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통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손쉽게 손에 넣는 것이 가능했지만, 그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열성을 다해 지식을 얻기를 택했다.「장송의 프리렌」의 프리렌은 대마법사 제리에로부터 어떤 마법이든 전수받을 수 있었지만, 그것을 거절하고 직접 생각하고 탐구하는 마법의 가치를 믿었다.무언가를 추구할 때 지향점을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것을 깊이 생각하고 느끼는 지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이들의 태도를 통해 다시금 상기한다.
하늘은 내가 가장 자주 사진으로 담는 피사체중 하나다.가을 하늘은 함께하는 단풍의 여러가지 색이 다채롭게 어우러져 더욱 멋지다.
사람은 일부러라도 좋은 이야기를 많이 읽어야 한다. 그래야 지금 내가 어디에 위치해 있고 어디를 향해 나아갈지 도움이 되는 이정표를 얻을 수 있다.
가을이라는 계절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고 있으면 풍요로움과 쓸쓸함이라는 상반되는 심상이 공존하는 것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물론 어느 계절이든 간에 사로 대치되는 요소들을 갖고 있지만, 유독 가을은 마음까지 물들이는 것 같은 새파란 하늘과 시들어서 뚝뚝 떨어진 뒤 바스러지는 검붉은 낙엽이 함께한다는 점에서 상승과 하강이 동시에 느껴지는 시기라는 것을 실감한다.아직 한해가 끝나기에는 2달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지만, 저녁 6시만 되어도 깜깜해진 하늘에 서늘한 달만 고요히 빛나고 그 아래를 쌀쌀한 바람과 함께 걷다보면 1년이라는 시간의 끝자락에 당도했다는 감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시간의 끝에서는 누구든 간에 지나온 발자취를 되돌이켜 보게 되고, 대부분은 '이 긴 시간동안 나는 무엇을 한 것일까'..
어떤 고난은 힘들더라도 어떻게든 하나씩 내가 주도적으로 노력해서 해나가고 있다는 감각을 받는다면, 어떤 고난은 쉽사리 해결되지 않고 제자리만 빙빙 돌면서 갑갑함과 슬픔이 고이는 것처럼 느껴진다.오늘은 후자를 크게 느껴 마음이 많이 슬픈 날이었다.사람들은 각자만이 공감할 수 있는 아픔을 지니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인생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나 역시 마주한 고난을 성숙한 태도와 주도적인 행동으로 헤쳐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그리고 동시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