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정원
2023.10.27 도쿄여행 1일차 - 설레는 나리타 공항, 들끓는 아키하바라, 찰랑이는 스미다강 본문
출국을 일주일 앞둔 시점에도 약 5년만에 다시 일본에 간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직장에 취직한지 1년 조금 넘은 시점에서 현생에 허덕이고 있었던 나는, 사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해외여행이라는 돈도 시간도 많이 드는 일을 벌이는게 과연 괜찮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아마 나 혼자였으면 무산되었을지도 모르는 이 여행은 동행한 애인님 덕분에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용기를 주신 애인님,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출국 비행기가 오전 7시 쯤이었기 때문에 공항 근처 숙소에서 잠시 쪽잠을 자고 오전 3시 반쯤에 기상해, 타고온 애인님의 승용차는 장기주차장에 주차해 두고 인천공항 실내로 들어왔다. 이때서야 겨우 정말 도쿄에 가는구나, 싶은 실감이 몸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출국 시간 전에 라운지에서 간단하게 조식을 먹은 뒤 출국심사를 마치고 출국 비행기장 근처 의자에 앉아 대기했다. 하필 라운지 입장 하자마자 10분 뒤가 브레이크 타임이어서 허겁지겁 먹기는 했지만 음식 퀄리티는 나쁘지 않았고, 항공도 제주항공을 이용했기에 출국절차도 대형 항공사보다는 비교적 간소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새벽 6시 반 무렵의 하늘은 아직 해가 뜨기 전이어서 비행장이 어둑어둑했다. 비행기를 타는게 너무 오랜만이어서 사실 꽤나 긴장을 했던 것 같다. 버스나 열차도 출발시간에 늦을까봐 자주 긴장하는 편인데 비행기는 더 심할 수 밖에. 그래도 무사히 출국 비행기에 탑승했다! 편도 소요 시간은 인천공항에서 나리타공항까지 약 2시간 정도.
드디어 일본 도착!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리타 공항 터미널 부근으로 나오자마자 맞이한 하늘은 정말 한없이 트이고 맑게 반짝였다. '앞으로의 여행은 정말 좋은 여행이 되겠구나' 하는 전조로 느껴질 정도였다.
나리타 제3터미널에서 밖으로 쭉 걸어나가는 통로에 포켓몬이 그려진 패널이 정말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귀여운 친구들이 잔뜩 나와서 입국을 환영해 주는 기분이라 잔뜩 들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에도 계속 나오겠지만 일본은 정말 어딜 가도 귀여운게 가득했다!!)
일본에 도착해서 처음 산 먹을거리가 도넛과 카페라떼였다. 각각 편의점과 자판기에서 구매했는데 이 맛있는 간식거리를 두개 사는데 합해서 300엔도 되지 않았다. 도쿄로 가는 열차를 타기위해 대기하는 동안 참 맛있게도 먹었다. (그 뒤에도 여행내내 줄기차게 저렴하고 맛난 음식으로 먹부림을 했는데, 속이 얹히는 순간에도 소화제를 먹어가며 식도락을 즐겼다...)
일단 숙소에 짐부터 맡기고 구경하기로 해서 숙소로 향하는 과정에 본 치이카와 친구들. 아마 스카이트리와 콜라보를 하는 모양이었다. 사진에는 없지만 에스컬레이터 옆면에도 치이카와 친구들이 장식되어 있더라.
도쿄 스카이트리의 모습이 훤칠하게 잘 보이는게 정말 날이 좋구나~ 싶어졌다.
숙소를 아키하바라 근처 긴시초에 잡았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일부러 아키하바라 근처에 잡았다.) 일단 체크인 전에 숙소에 짐을 맡겨둔 뒤 아키하바라 구경을 다니기로 했다. 최근 홍대 부근도 꽤나 오타쿠 친화적으로 변했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아키하바라는 뭔가... 훅 끼치는 느낌부터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로 모바일 소셜게임 (블루아카이브, 원신, 우마무스메 등) 광고가 유독 많았는데, 나로서는 정을 붙일만한 무언가가 바로 눈에 띄이지는 않아서 아쉬웠다. 그렇지만 한명의 오타쿠로서 서브컬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거리를 걷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무척 신나는 경험이었다.
점심식사는 아키하바라 역과 가까운 식당에서 우나기동을 먹었다. 장어요리는 자칫하면 비릿하고 가시가 입에 걸려 곤혹을 겪는경우가 많은데, 이곳의 우나기동은 그런 걱정을 말끔히 날려버리는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새벽부터 고생한 몸과 마음을 따뜻한 식사로 잘 다독여준 기분이었다.
그 뒤로는 주로 스루가야, 만다라케 같은 오타쿠 샵을 돌아다녔는데, 기본적으로 실내 촬영 금지일 뿐더러 생각보다 나의 마음을 확 잡아끄는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에 여유 있을때 더 둘러보기로 하고 게임센터 구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확히 어떤 게임센터였는지는 잘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 타이토스테이션이었나?), 최근 꽤 좋아하는 애니 '봇치 더 락'의 주인공 봇치의 괴짜같은 모습을 가감없이 인형으로 만든 프라이즈가 있어 반가웠다. 하지만 인형뽑기에 자신이 없을 뿐더러 돌아다니느라 바쁘기도 해서 아쉽게 뒤로하고 돌아섰다.
게임센터 'GIGO' 에서는 정말 다양한 음악게임이 줄지어 있었다. 무엇보다 BEMANI 시리즈에 애정(이라기 보다는 애증에 더 가까운)이 깊은 나와 애인님은 흥미진진한 눈으로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비마니 카드 굿즈를 뽑을 수 있는 '카드 커넥트' 기체를 발견했다. 사운드볼텍스의 카드 제네레이터와는 다르게 국내 정발이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온 김에 꼭 뽑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대뜸 파세리를 충전해 가챠 버튼을 눌렀다.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은 결과물이 나왔지만 프린팅에 소요되는 시간이 꽤나 긴 점, 가챠를 돌리는 것과 카드를 출력하는데 드는 비용은 별개인 점이 못내 아쉬웠다.
그래도 팝픈카드 실물을 손에 꼭 쥐니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기체에서 종이로 된 팝픈카드를 뽑을 수 있던 건 일본에서도 사라져가고, 그러다가 카드커넥트가 등장했기 때문에 사실상 직접 팝픈카드를 뽑아본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전까지는 항상 메루카리나 스루가야, 아니면 국내 중고판매 같은 온라인 매물로 구했었다.) 키쿄, 토아, 체루밍은 비교적 최근 스탠딩 이미지로 나온 카드라 더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beatmania 구작 시리즈 (일명 5건비트)을 드디어 해볼 기회가 있었다! 슬프게도 조작법이 너무 익숙하지 않아 Complete Mix 2는 첫 크레딧에는 완전히 실수연발만 했다. 그래도 (사진에는 없지만) Final은 비교적 가시성이 양호한 편이라서 그걸로 먼저 적응한 뒤 다시 2를 하니까 할만 해졌다. 좋은 예전 BEMANI 수록곡들에 좀 더 귀를 기울이고 싶었는데, 게임센터 내부가 많이 시끄러워서 잘 들리지 않는 점이 아쉬웠다.
아키하바라는 역시 피규어 홍보 포스터가 많았는데, '기동전사 건담 수성의 마녀' 의 등장인물 니카와 츄츄 피규어 홍보 포스터를 발견해서 반가웠다. (나는 슬레타와 미오리네 못지않게 이 둘의 케미도 좋아했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고 수면이 잔잔하게 일렁이며 반짝이는 기차 밖 풍경은 정말 예뻤다.
숙소 체크인 시간이 되어 돌아오니 미리 호텔주소로 부쳐둔, 사전구매한 M3 카탈로그 2부가 도착해 있었다! 사실상 도쿄여행 일정을 M3 행사 당일과 일부러 맞춰서 온것이니, 카탈로그를 손으로 쓸어보는것 만으로도 설렘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너무 오타쿠 같다면... 너무 오타쿠 맞으니 그러려니 해주시길.
저녁식사는 숙소 근처 라멘집에서 토마토 라멘을 먹었다. 개인적으로 연희동에 있는 책방 '페잇퍼'의 토마토라면을 정말 좋아하는데, 토마토라멘도 맛있었다. 토마토의 새콤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풍미가 조금 느끼할 수도 있는 라멘과 찰떡으로 어울렸다.
애석하게도 저녁을 너무 과하게 먹은 나머지 소화불량에 고통받는 저녁이 되어버렸다. 그당시 계속 만성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있었는데(지금도 그렇지만), 신경성이 의심되는 만큼 여행와서는 괜찮겠다고 방심한게 불찰이었다. 소화도 시키고 산책도 할 겸해서 탄산음료를 마셔가며 스마다강(스미다가와) 까지 걸어갔다. 도심에 위치한 강인데도 조용하고 고즈넉한 느낌이 드는 강이었다. 강물이 맑게 찰랑이는 소리가 특히 아름다웠다.
그리고 꼭 해보고 싶었던 인증샷을 찍었다!! 스미다 강을 배경으로 BEMANI 게이머라면 모를수 없는 명곡 '隅田川夏恋歌(스미다강 여름 연가)' 를 재생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일본 와서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좋아하는 곡의 배경에 직접 가서 이런 인증샷을 남겨보는 것이었다. (후에 2일차 여행에서 또다른 각별한 장소에서도 이런 사진을 찍었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서점 키노쿠니야도 구경했다. 본점은 아니고 분점 정도 되는 곳이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한적했다. 천천히 둘러보기 좋은 것은 고마웠지만, 아무리 일본이 한국보다 독서량이 많다고 해서 금요일 저녁에 서점이 북적이지는 않겠구나 싶어져서 약간은 복잡한 마음이 되었던 것 같다. 여기서 문구도 여러종류 팔고 있어서, 푸른색 종이에 흰 꽃이 새겨진 아주 예쁜 편지지 세트를 구매했다. (이 편지지를 어디에서 사용하는지는 2일차 여행기에서!)
거리에 켄터키 할아버지 모형이 KFCx파이널판타지14 콜라보 홍보를 하고 있었다. 꼭 포스터나 현수막이 아니어도 일본 길거리는 이렇게 서브컬처 콜라보를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러고 멜론북스 아키하바라점 지하 1층에... 갔는데(;;;) 평소 일본 서브컬처의 어둠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나조차도 현장에서 성인물 만화 잡지 앞에서 북적북적 서성이는 사람들을 보니 도저히 그 사이를 헤집고 구경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애인님은 이때 몹시 당혹스러워하던 나를 두고두고 놀림감으로 쓰고있다...) 전연령 코너에서 좋아하는 작품의 2차창작 동인지나 평소 관심있던 일러스트레이터의 책을 구경하는건 재밌었다.
이후 밤에는 몸에 체력이 남아나질 않아 나는 일단 숙소로 들어가 먼저 쉬었고 애인님은 금기체로만 취득할 수 있는 DDR 단위인정을 취득하러 다시 아키하바라 게임센터에 다녀왔다. 그렇게 첫날 일정이 저물어 갔다.
- 2일차에 계속 -
'여행 > 2023.10 도쿄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3.10.30 도쿄여행 4일차 - 여행의 마무리 (0) | 2024.10.20 |
---|---|
2023.10.29 도쿄여행 3일차 2부 - 힘나는 히다카야의 음식, 오리나스 쇼핑몰에서 밤산책 (0) | 2024.08.16 |
2023.10.29 도쿄여행 3일차 1부 - 여행의 최종 목표, M3 (0) | 2024.06.01 |
2023.10.28 도쿄여행 2일차 - 드디어 조우한 크로스비츠와 팝픈파티, 시부야와 오모카게바시의 풍경 (0) | 2023.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