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정원
「장송의 프리렌」과 「던전밥」에서 악의 존재인 '마물' 을 다루는 방식의 차이 본문
「장송의 프리렌」과 「던전밥」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판타지 만화입니다. 두 작품 모두 마법과 던전, 엘프와 드워프, 검과 지팡이 등 정통 판타지 설정을 차용해 이야기를 구성해 나가는 작품인데, 모티프의 차용은 비슷할지 몰라도 두 작품에서 그 설정을 다루는 양상은 상당히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가장 큰 차이점을 느꼈던 점이 '마물' 이라는 악의 대상을 어떻게 묘사하는 지에 대한 방식이였습니다.
「장송의 프리렌」의 경우, 마물은 죽으면 마력의 입자가 되어 흩어지며 그 흔적이 남지 않습니다. 아무리 마물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말하고 싸운다 해도 그들은 악일 뿐,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서는 반드시 냉정하게 처단해야 하며, 죽은 그들에게는 이유나 의미가 남지 않습니다. 마물에게는 영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사후에 대한 고찰이나 추모의 의식에 대한 개념도 없습니다. 오로지 영혼을 가진 인물들이 관념적인 껍질을 뒤집어 쓴 악의 모습을 담담하고 냉정하게 재단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반면 「던전밥」의 경우에 마물은 죽으면 형체가 남습니다. 인물들은 그 형체로 식사를 해먹고 옷도 만들고 도구로도 사용합니다. 「장송의 프리렌」과는 상반되게 유물론적인 관점으로 마물을 묘사합니다. 마물에 남아있는 영혼을 희미하게 만드는 방법이 오로지 먹어서 소화시키는 방법뿐이라는 것은, 마물에도 영혼이 질기게 남아있기 때문에 그 영혼을 더 강한 영혼이 집어 삼켜야만 간신히 이길 수 있다는 역설적인 접근으로 다가왔습니다. 「던전밥」 에서 악은 인간이 잡아먹기도 하고 잡아먹히기도 하므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복잡다단한 존재입니다.
「장송의 프리렌」에서 악은 맞서야 하는 존재이며 이는 예외를 두지 않는 단호함을 품고 있습니다. 반면 「던전밥」에서 악은 때에 따라 인간이 직접 다루기도 하고 매혹당하기도 하는 존재로서 끊임없이 상호작용합니다. 악을 절대적인 존재로 보는지 상대적인 존재로 보는지는 의견이 갈릴 여지가 분명히 있지만, 각자만의 작품 내에서 뚜렷한 주제 방향성을 추구하는 모습은 어느 쪽이든 매우 인상깊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