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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카 타츠야 「미니어처 라이프 : 미타테 마인드」 전시 본문

전시/미술전시

타나카 타츠야 「미니어처 라이프 : 미타테 마인드」 전시

inkypen 2024. 5. 4. 22:43

이전에 친한 지인분의 집에 초대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집 책장에 꽂혀있던 책 중 하나가 타나카 타츠야 작가님의 전시 도록이었는데, 재기발랄하게 만든 미니어처 작품 사진이 가득한 페이지를 넘기며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작품을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던 와중 여의도 MPX 갤러리에서 다시 전시를 한다는 소식에 4월 24일 오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전시장을 방문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팜플렛도 티켓도 디자인이 예쁘고 튼튼해서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디지털 매체가 더 편리한건 알지만 그래도 역시 이런 지류 인쇄물에는 마음이 자꾸 가더라고요.

전시 제목인 '미타테 마인드' 는 사물을 다른 대상에 빗대고, 비유의 표현을 사용해 이 세상을 다른 시야로 바라본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안경의 두 알을 자전거의 바퀴에 빗대거나 청바지의 파란 천과 흰 보풀을 파도에 비유하는 등, 서로 간의 공통점을 통해 대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말로만 하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타나카 타츠야 작가님은 그 모든 상상력을 미니어처를 사용해 직접 만들어내는 놀라운 실행력을 보여줍니다. 아주 태연하게 빵이 지구가 되고 아이폰 카메라 렌즈가 목욕탕이 됩니다. 수박은 산등성이가 되고 옥수수가 가방이 되는 건 그의 세계에서는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이지요. 심지어 작가님이 이런 미니어처 작품들을 13년 동안 매일 1회 업로드를 원칙으로 작업하고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전시 코너는 'HOME(일상)', 'FORM(모양)', 'COLOR(색)', 'SCALE'(크기)', 'MOTION(움직임)', 'LIFE(의인화)', 'WORLD(공통점)', 이렇게 일곱 가지 테마로 나뉘어 있습니다. 각 주제에 맞춰 작품들이 정성스럽게 분류되어 있었기 때문에 작품 이해가 더 쉬웠음은 물론이고 종횡무진으로 뻗어나가는 상상력을 연이어 감탄하며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주제는 'SCALE'(크기)' 로, 똑같은 사물을 사용하더라도 비율이 각기 다른 사람 미니어처 모형을 사용하면 그 사물이 빗댈 수 있는 대상이 천차만별이 되는 점이 무척이나 신선했습니다. 크기와 비율의 차이가 인간의 인식 체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해 좋은 의미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전시에서 작품 자체만큼 감탄한 점이 바로 번역입니다. 타나카 타츠야 작가님의 작품은 비유와 빗댐을 주제로 한 만큼 작품 제목도 비유적인 표현이 반드시 들어갑니다. 쉽게 말하면 말장난 제목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법은 한국어로 직역하면 그 의미가 통하지 않는 제목이 태반입니다. 놀랍게도 이 전시에는 일본어 원문 제목을 필요에 따라 은유법이나 다른 한국어 말장난으로 대체해서 번역해 두었고, 일본어를 조금 읽을 줄 아는 제 입장에서는 정말 대단한 정성을 들였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일본어 원제와 한국어 제목을 병치하고, 그 아래에 번역가가 이러한 의미에서 이런 번역을 채택했다는 설명을 읽는 것도 재밌었습니다. 일본어를 전혀 몰라도 의역된 제목을 통해 큰 무리없이 전시를 즐길 수 있고, 일본어 지식이 있다면 원제와 번역을 비교해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어 무척 좋은 인상이 남았습니다.

상상력과 예술성을 겸비한 작품을 실컷 보고나면 언제나 들뜬 마음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런 고양감이 차오르면 기념품을 꼭 사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는 기념품샵에서 미니 도록과 엽서와 책갈피를 구매했습니다. 미니 도록은 후기를 쓰는 지금도 펼쳐 보면서 그때 느꼈던 감상을 떠올리고 되새기고 있습니다. 책갈피는 읽고 있는 소설책 사이에 끼워두었고요. 엽서는 단순히 감상용으로 소장하기보다는 이런 상상력을 좋아하는 친한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낼 때 쓰고 싶네요.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 라는 메세지는 자칫하면 진부해지기 십상입니다. 그럼에도 「미니어처 라이프 : 미타테 마인드」 는 관람하는 저에게 지루할 틈을 전혀 주지 않았고, 시선을 어떻게 두냐에 따라 얼마나 다채로운 세상을 발견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점을 알려주는 전시였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다양한 경험을 통해 시선을 넓히고 싶다는 갈증을 느끼던 지금의 저에게 있어 무척이나 소중하고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